<돈많은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주목했던 건 나름 괜찮은 연기력과 훌륭한 작품선정에도 불구하고 왜인지 가쉽란에만 오르락 내리락 하는지 안타깝기만 한 제니퍼 에니스톤이라는 배우도 아니었고, (홍보물들을 따르면 이 영화의 주제인) 네 명의 여성들의 우정과 돈 사이의 관계도 아니었고,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둔뒤 가정부 일일 전전하다가 막판에 뜬금없는 행운을 만난 주인공 올리비아도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한 남자에게 계속 시선이 갔고, 그가 무척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바로 이 사람.↓

Simon McBurney(아론 역)


극 중 디자이너로 나오는 제인(프란시스 맥도맨드)의 남편 아론(시몬 맥버니)은 종종 게이로 오해받는 남자다.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부터 그는 어떤 옷을 고를까 고심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을랑 말랑하는(흔히 여성들이 맡는) 장면을 연출한다. 또 옷을 사러 가서는(위 사진) 귀엽게 이 옷 저 옷을 고르다가 게이 남성으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기도 한다.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역시 아론처럼 게이는 아니지만 여성적인 어느 양말 디자이너를 빵집에서 알게 되어 함께 영화를 보고 그의 집(겁나게 멋있다!)에서 식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두 중년 남성이 맛있는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동시에 사뿐히 집어드는 그 장면에서 극장 곳곳에서 작은 웃음 혹은 탄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참고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들 중 하나는 "사람들은 @#$@%$%^@#4 하기만 하면 그저 다 게이인 줄 안다니까요, 으하하하"였다.)

단순히 외적인 측면 뿐 아니라 내적인 측면에서도 아론은 흔히들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성품을 갖춘 남자다. 이혼위기를 겪고 있는 아내의 친구가 아내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그 자리에는 아론이 항상 같이 등장한다. 그는 마치 동성 친구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물론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내의 친구 역시 그가 게이라고 생각하지만.ㅡㅡ;;

이 남자, 아론을 통해 나는 이 영화, <돈 많은 친구들>을 '여성-되기'의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세간의 통속적인 이해(오해)와는 달리 '여성-되기'는 어떠한 '여성적 정체성'이 있고, 그것의 정체성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되기는 비-남성-되기이다.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성만이 존재한다.  남성. 여성이라는 성은 사실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남성적이지 않은 모든 특성들(주로 부정적이거나 간혹 맹목적으로 찬양받거나 하는)의 집합이다. 즉 남성만이 '척도'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되기'란 능동적으로 그러한 남성적 척도를 벗어나는 운동이다. 이와 달리 여성들이 '여성적 정체성'을 구성해 또 하나의 '척도'를 만들어낼 때 그것은 또 하나의 남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운동 속에서는 다양한 차이와 척도를 벗어나는 힘들은 소멸되고 만다. 그렇기에 들뢰즈/가타리는 "여성도 '여성-되기'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여성-되기란 소수-되기이고, 첫도를 벗어나 지각불가능하게-되기 이다. 아론이 게이인지 아닌지 우리는(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도) 끝까지 알 수가 없다. 그의 주변 인물이나 관객들은 계속해서 그의 '정체성'이 무언지를 발견하고픈 욕망을 드러내지만 그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그는 여성-되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되기를 통해 그는 아름다움에 민감할 줄 알고, 친구와 친밀함 그 자체의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성품은 본래 '여성적'이거나 '게이적'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여성들이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남성적 척도로부터 벗어나있기 때문이다. 같은 생물학적 여성이라도 박근혜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성-되기를 할 필요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올리비아의 친구들, 그 중에서도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어떠한 불행도 갈등도 겪지 않고 행복한 프래니(조앤 쿠색)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친구 올리비아에 대한 '여성적 우정'을 과시한다. 남자도 소개시켜주려고 하고, 일자리를 주려고도 한다. 그리고 언제나 올리비아에 대한 걱정을 입에 달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소개시켜주려는 남자는 바람둥이에다 여자를 울궈먹고 사는 형편없는 남자이고, 그녀가 추천하는 일자리는 '자기 집 가정부'다.ㅡㅡ;; 그녀는 끊임없이 모성애적 감성으로 가득차서 올리비아를 걱정하지만 단 한 번도 올리비아의 마음에 닿지를 못한다. 그녀는 여성-되기의 관점에서는 그야말로 무능력하기 짝이 없다. 올리비아의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서로가 그냥 '친구'들일 뿐 정말 마음이 통하고, 깊은 우정을 나누고 있는 건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올리비아는 그들에게서 끝까지 '불쌍한 친구'일 뿐이다.

부유하고 행복한... 그러나 무능력한 프래니와 그의 남편


그러나 아론은 올리비아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그녀와 그녀의 새 애인의 진가를 제대로 파악한다. 가정부 일이나 한다고 올리비아를 타박하는 아내에게 "가정부 일이 어떠냐?"라고 말하고, 자리 하나당 1천달러짜리 자선파티에서 나눠주는 고급용품을 올리비아에게 '적선'하는 친구들과 달리 아론은 자기 것을 챙긴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남자가 귀엽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도 그 양말 디자이너처럼 저런 남자의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친절하고, 남에게 쉽게 상처주지 않고, 그러나 마음에 깊이 다가오고, 패션에 대해서도 코치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그리고 그런 친구와 함께 여성-되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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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리 2006년 08월 11일 12시 21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나도 이 아저씨 참 좋았어. 친구하고 싶었던 사람. 리뷰 재밌다. ㅎㅎ 나도 좀 부지런해져서 본 영화들 메모라도 해 놓아야 할텐데~ 조만간에 맥주도 한 잔 하자구~

    • BlogIcon 김강 2006년 08월 11일 12시 30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맥주 좋아좋아~(다른 술은 더 좋아좋아~ㅋㅋ) 요 다음번엔 커피와 담배를 보려 하는데 언제쯤 시간이 날지...ㅜㅜ

  2. BlogIcon susanna 2006년 08월 20일 01시 40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어요.마음에 드는 관점.^^ 저 아저씨 되게 귀엽더라구요.아내 친구들을 동성친구처럼 대하는 걸 보고 아주 마음에 들었답니다~.

  3. 바다를유영하다 2006년 09월 03일 19시 30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론 저 사진 너무 귀엽잖아 이거 >.<
    으아아아